나이를 뛰어 넘은 배움에 대한 수학자의 열정이 인상적이었다. 에르되시의 뛰어난 공동 연구자가 바시는 그의 훌륭한 조력자가 되었다. 에르디시는 어떤 문제가 어떤 사람에게 적 한지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볼로바시의 재능과 당시의 수준에 맞는 사소한 문제로 에르디시가 제안한 것이었다. 그는 언제나 어떤 문제가 누구에게 적절한지를 알고 있었다.

수학 신동과 교류하는 에르되시
그는 종종 각각의 말에게는 제각기 다른 길이가 필요하다고 말하곤 했다. 계속해서 에르디시가 개척한 분야인 극치 그래프 이론과 무작위 그래프에 대한 중요한 연구 논문을 쓰게 된다. 에르디시가 65세가 되었을 때 볼로바시는 캠브리지 대학에서 그를 기념하는 학술회의를 개최했으며 계속해서 5년마다 학술 회의를 열게 된다.
에르디시가 양성한 제자들 중에서 가장 큰 애정과 아쉬움을 동시에 가지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러요시 포사(Lajos Posa)였다. 1959년 에르디시가 헝가리를 방문했을 때 그는 어머니가 수학자이며, 고등학교에서 알아야 할 것을 모두 알고 있는 어린 소년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에르디시는 즉시 관심을 표명하고는 11살짜리 신동과 함께 공부하고 있던 수학 자인 로자 페테르(Rózsa Péter)를 초청하여 점심을 먹기로 일정을 잡았다.
에르디시는 수프를 먹는 동안 그에게 문제를 냈다. 1부터 2n까지에서 n+1개의 정수를 고른다면 이들 중 적어도 두 개는 상대적 소수임을 증명하라고 한다. 두 정수가 1보다 큰 공통 인수를 갖지 않는다면 이 두 수는 상대적 소수이다.
예를 들면 7과 15는 상대적 소수이나 10과 25는 5라는 공통의 인수를 가지므로 상대적 소수가 아니다. 에르디시의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n의 값을 정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 경우에 2n은 10이며 n+1은 6이다. 에르디시가 증명해 보라고 한 작은 정리에 따르면 1부터 10까지에서 여섯 개의 서로 다른 정수를 고른다면 이들 중 적어도 두 수는 상대적 소수이어야만 한다.
만일 5개의 서로 다른 정수만을 선택한다면 이 정리는 성립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짝수 2, 4, 6, 8, 10을 선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짝수는 2의 배수이므로 어떤 2개의 짝수도 상대적 소수가 아니다. 음식이 가득 담긴 숟가락을 공중에 들고는 잠시 동안 꼼짝도 하지 않다가 세 단어를 내뱉음으로써 증명을 해냈다.
놀랍게도 그녀는 1부터 20까지의 수 중에서 절반 이상을 선택하면 그 중 두 수는 반드시 연속이며 연속인 수는 언제나 상대적 소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10개의 바구니가 일렬로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6개의 공으로 한 바구니에 하나의 공을 분배한다. 단, 어떤 2개도 이웃하는 바구니에 집어넣으면 안된다.
처음 5개의 공은 한 바구니씩 건너 뛰면 되지만 마지막 6번째의 공은 반드시 이미 공이 들어 있는 바구니 사이에 놓여 있는 바구니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몇 년 전에 이 작은 정리를 발견했던 에르디시는 증명을 찾아내는데 10분을 소요 했었다. 에르디시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정말로 대단한 감명을 받았다.
나는 이 아이가 가우스와 같은 수준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기록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어린 가우스는 1부터 100까지의 정수의 합을 단번에 구했었다. 강의에서 에르디시는 여행 중일 때는 편지에 문제를 담아서 보내고 부다페스트에 있을 때는 만나면서 항상 포사를 곁에 두고 연구를 진행했다. 에르디시는 그에게 무한에서의 램지 정리를 설명해 주었다.
설명한 다음 집으로 가고선 저녁 내내 그것에 대해 생각했고 결국 잠자리에 들기 전에 증명을 해냈다. 놀랍게도 그를 성인 수학자로 여기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고 에르디시는 회고 했다. 에르디시는 수학을 논하기 위해 그에게 전화를 걸곤 했는데 만일 문제에 포함된 내용 중에 배울 시간이 없었던 복잡한 수학만 아니라면 그가 문제와 관련하여 훌륭한 논평을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에르디시와 공동으로 연구한 첫 번째 논문은 그가 14살이었을 때 출간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중요한 독창적 성과를 담은 단독 논문을 출간하게 된다. 이상하게도 미적분학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에르디시는 그가 기하학에 흥미를 갖게 하는데 실패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정말로 흥미를 느끼는 것만 했고 그 방면에서는 매우 훌륭했다고 에르디시는 자부심과 분노가 뒤섞여 있는 감정으로 언급했다.
수학자는 커피를 정리로 바꾸는 기계라는 레니의 명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에르디시는 14살짜리 연구소에서 마시는 방식으로 진한 커피를 마시라고 주었다. 이를 전해 들은 에르디시의 어머니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아들을 나무랐다. 그러자 에르디시는 수학자의 일을 하므로 수학자의 음료를 마시는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이는 언젠가 들었던 위스키를 마시는 서부의 어린 카우보이가 한 말을 각색해서 대답한 것이다. 이후 그는 학교를 진학하면서 재능 있는 수학도들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막 개설한 파제카스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학교에는 놀랍게도 여러 명의 능력 있는 어린 수학자들이 있었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사람들을 포함하여 에르디시에게 소개하였다. 또 에르디시는 아틸라 마테(Attila Mate)라는 이름의 어린 수학 신동과 서신을 교환했는데 이 아이는 젊은 수학자 클럽의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1년에 몇 번씩 부다 페스트를 방문하곤 했다. 한 번은 부다페스트에 온 그가 에르디시의 아파트에 전화를 걸어 만남을 요청하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