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은 에드리시의 일대기를 알아본다. 에르디시는 청년기에 10년 동안이나 미국에 체류하면서도 언젠가는 헝가리로 돌아가리라는 뜻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 샘(Sam)과 조(Joe)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지켜보면서 강대국을 불신하게 된 에르디시는 10년 동안 미국 생활을 하면서도 시민권을 얻기 위한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거기다 자신의 학생 비자를 갱신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네덜란드로 떠난 에르디시
1948년 헝가리를 포함한 유럽 여행을 위해 미국을 떠나려 했을 때 행정적으로 아주 골치 아픈 일이 일어났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미국을 자유로이 드나드는데 필요한 녹색 카드를 얻을 수 있었 다. 여행의 첫번째 기착지는 네덜란드였다. 그곳에서 그는 네덜란드의 일류 수학자들과 함께 조합론, 정수론, 그리고 해석학 문제들에 관한 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했다.
에르디시는 부다페스트에서 알고 지냈던 젊은 수학자 알프레드 레니(Alfred Renyi)를 암스테르담에서 만났다. 에르디시는 책도 없었고 다시 씌어진 이론도 없었다. 제타 함수와 소수 정리 사이의 강한 연관성에도 불구하고 그 증명은 리만 가설의 신비를 풀지 못했다. 뒤돌아보건대 그것은 결코 그렇게 중요한 수학 문제는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다고 회상했다.
에르디시와 셀베르그 두 사람 모두의 절친한 친구였던 멜 빈 나단슨은 말한다. 어떤 헝가리인들은 셀베르그는 필드 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 에르디시가 그것을 받았어야 했다고 말하며 뛰어 다녔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그렇지만 그런 건 다 쓸데 없는 짓이다. 그것은 정말로 셀베르그에게 부당 하며, 에르디시에게도 부당하다. 왜냐하면 두 사람 다 이런 것과는 별개로 아주 중요한 연구를 해냈으며, 두 사람 중 그 누구라도 필드 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에드리시는 골드바흐의 추론이 실제로 대략 백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 데카르트가 이미 예견했었다는 점을 재미있다는 듯이 지적하곤 했다. 에드리시는 골드 바흐의 추론이라는 그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즉 자신의 정의감을 강력하게 과시하는 나름대로의 논리를 펼치 나갔다.
무엇보다도 먼저 골드바흐는 오일러에게 자신의 추론을 적어 보냄으로써 이를 유명하게 만든 공로가 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또 골드바흐는 아주 가난뱅이이고 데카르트는 아주 부자인데 그 공로마저 데카르트에게 돌아간다면 그것은 마치 아이에게서 사탕을 빼앗는 것과 같은 짓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그 후 2백여 년에 걸쳐 골드바흐의 사탕은 수학적으로 매우 깨물기 힘든 단단한 사탕으로 판명되었다. 골드바흐 추론을 이상하게 변형한, 즉 9 이상의 모든 홀수는 세 개의 소수의 합으로 쓰여질 수 있다는 추론은 1936년 비노그라도프에 의해 부분적으로 해결되었다. 에르디시는 비노그라도프의 증명을 알게 된 바로 다음날 친구 게오르게 세케레시와 에시테르가 결혼했기 때문에 언제 나 그 날을 기억해내곤 했다.
그러나 짝수에 대한 추론은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었으며, 신뢰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수학자들의 본능에 따르면 아주 오랫동안 그런 상태로 남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1947년에 레니가 그 추론을 증명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다. 모든 짝수는 하나의 소수와 거의 소수인 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거의 소수인 수는 작은 개수의 소인수만을 갖는 수이다. 여기에서 ‘작다’는 말은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정의할 수가 있다. 그 후 레니의 연구 결과는 모든 짝수는 하나의 소수와 두 개의 소인수를 갖는 수의 합으로 표현되어질 수 있음을 보여 중국인 수학자 첸 징런(Chen Jingrun)에 의해 보다 발전한다.
그것은 실제로 소수가 아닌 수도 소수에 근접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명제였다. 1970년 49번째 생일을 몇 주 앞두고 요절하기까지 레니는 에르디시의 가장 중요한 공동 연구자로 32편의 논문을 공동 집필하였다. 그들이 함께한 수 많은 연구들은 시도 때도 없이 마시는 진한 커피 때문에 달아 오르곤 했다.
카페인은 세계의 수학자들 대부분이 선택한 음식으로 이를 섭취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액상으로 마시는걸 가장 선호하고 있었다. 자신도 상당한 에스프레소 커피 애호가였던 레니는 수학자는 커피를 정리로 바꾸어 주는 기계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것은 아마도 에르디시를 보고 한 말이라고 생각된다. 어떤 증명에서 보조정리는 작은 정리로 일반적으로 보다 더 중요한 정리를 증명하는 데 도움을 주는 정도에 그친다. 아메리칸 스타일의 커피를 한 잔 마신 후 한 수학자는 경멸적으로 다음과 같은 추론을 만들어 냈다는 후문이다.
“연한 커피는 보조정리에나 적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