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 에르디시가 겪은 미국에서의 삶

수학자 에르디시가 겪은 미국에서의 삶에 대해 알아보자. 수학자 에르디시가 1956년에 회원으로 선출 되었던 헝가리 과학원과의 연관성에 대한 몇 가지 부가적인 설명이 주어진 이후에 마침내 에르디시는 1963년 미국을 방문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그 이후 다시는 비자 문제가 그를 괴롭히지 않게 되었다. 한 강의 도중에 에르디시는 “샘은 이제 내가 너무 늙고 쇠약해져서 자기를 뒤엎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마침내 나를 받아들여 준 것이다”고 장난 삼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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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디시의 미국 라이프

다시 헝가리로 미국에서 추방되었던 여러 해 동안 에르디시는 헝가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국제적인 명성을 날리고 있는 에르디시를 매우 자랑스러워 했던 헝가리인들은 그에게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영사 여권을 발부해 주었다. 에르디시는 헝가리 과학원에 선출된 것을 진지하게 받아 들였고 총회 참석차 부다페스트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시간을 냈다.

그러나 그는 과학원이 주는 명예에 대해서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에르디시는 투란과 레니, 그리고 다른 옛 친구들과 공동으로 즐겁게 연구를 진행하는 것과 동시에 젊은 세대도 적극적으로 키워 나갔다. 전쟁이 끝나 처음으로 헝가리로 돌아온 1948년에, 친구 갈라이는 그에게 뛰어난 어린 고등학생을 소개해 주었다.

그 후 8년 후인 1956년에 다시 부다페스트를 방문했을 때 계속해서 에르디시는 재능 있는 인재를 찾아나섰다. 1956년의 여행에서 에르디시는 세게드 대학을 방문하였고, 그 곳에서 안드라시 하지날(András Hajnal)이라는 이름의 젊은 대학원생을 만났다. 당시의 많은 젊은 이들이 그러 했듯이 하지날도 에르디시에 대해서는 들어보았지만 여행을 규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당시 하지날은 이미 여러 해 전에 체비셰프의 정리에 대한 에르디시의 첫 논문을 다시 쓴, 옛 친 구 칼마르의 제자였다. 칼마르는 하지날을 집합론을 연구하는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이라고 소개하고 나서, 그들을 커피 탁자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거대한 안락의자에 앉혀 놓고 사라져 버렸다.

처음에 하지날은 긴장했다. 유명한 사람과 단둘이 남게 되자 자신은 정말로 영광이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조금 당혹스럽기까지 하였다고 밝혔다. 에르디시는 하지날에게 그의 박사 논문에 대해 물었다. 그것은 집합론의 경계선에 위치하는 주제를 다룬 것으로 에르디시는 그 주제에 대해서는 흥미를 갖고 있었지만 이를 전개하는 논리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사실 그는 논리에 대해서는 별다른 흥미가 없었다. 다만 절대적인 진리만을 믿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여기에 펼쳐진 자신의 연구에 자부심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그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잠시 듣고 있다가 에르디시는 그의 설명을 끊고 질문했다. 공식적이고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이어지던 대화가 갑자기 생기가 흐르며 활기를 띠었다. 얼마 안가 그들은 몇 가지의 작은 정리들을 증명했고 추가로 몇 가지 추론도 이끌어 냈다.

수학과가 위치한 건물 근처에는 1930년대에 세워진 두 개의 탑이 높다랗게 솟아 있었다. 다소 보기 흉한 성당이 있던 것으로 하지날은 기억하고 있었다. 에르디시는 여행할 때마다 비록 전망이 좋지 않다 하더라도 주위에 서 가장 높은 건물에 올라가 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고 회상했다.

에르디시는 넘어 지지 않았고 불평하고 있지 않을 때는 더 많은 결론과 추론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들은 그날 밤 칼마르의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연구를 계속 했다. 헤어질 때는 그들의 첫 논문을 절반 정도 완성한 채 오랜 친구들처럼 헤어졌다.

에르디시는 부다페스트에 오면 어머니가 사는 아파트에서 머물렀다. 이 곳에 자주 들렀던 하지날은 수학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언제나 2가지 작은 의무사항을 실행해야만 했다. 그는 에르디시의 엄마를 위해 십자 말풀이를, 그러고 나서는 에르디시를 위해 체스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숨이 차고 현기증을 일으키는 탑에 오르면서도 가장 어렵고도 난해한 수학 문제들을 풀어내던 에르디시지만 종종 단순한 체스 문제에 애를 먹곤 했다. 하지날은 체스 문제에 부딪히면 한참 쳐다보다가 인내심을 잃고 포기하고는 곧장 수학 문제로 돌아가려고 했다고 회상했다.

그의 동료들은 일단 수학 연구에 착수하면 거의 무한정으로 연구를 계속하려는 에르디시 때문에 할 수 없이 자구책으로 저녁 7시 이후 에는 수학을 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규칙을 만들었 권하였다. 하지만 체스를 두다가도 도중에 에르디시가 수학 이야기를 끄집어내 화제를 돌리려고 하면 그들은 과감히 제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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