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적 추론과 토론을 즐긴 위대한 수학자 이야기

수학적 추론과 토론을 즐긴 위대한 수학자 이야기를 알아본다. 에르디시는 자기 침실로 가서 밤늦게까지 자신의 수학 일지에 기록을 했다. 에르디시는 평생토록 수학적 생각과 그가 그날 만났던 많은 수학자들과 토론했던 증명과 추론을 일지에 꼼꼼하게 기록해 두었다. 여러 달 전에 중단되었던 대화를 다시 이어 시작 하는 에르디시의 놀라운 능력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생각 없이 튀어나 오는 것 같지만 아마도 그러한 일지가 상당한 도움이 됐을 것이다.

헝가리의 수학자 에르디시

어린 천재 수학자들 헝가리 과학원의 회원에게는 특권이 주어진다. 과학원은 회원들이 쉬면서 평화로이 연구할 수 있는 편안한 자연 환경을 갖춘 작은 휴양지도 가지고 있었다. 1년에 2~3번 에르디시와 그의 어머니는 마트라 산의 숲이 우거진 언덕에 위치한 과학원의 휴양지인 마트라하자에 머물곤했다.

마트라하자에 머무는 대부분의 다른 과학원 회원들은 연로한 학자와 작가들이었으므로 조용히 식사를 했다. 하지만 에르디시와 그의 친구들은 시끄럽게 이야기와 생각들, 그리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럴 때면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커다란 탁자를 질투어린 시선으로 바라 보았다. 에르디시는 종종 헝가리의 예술과 과학의 선도적인 대가들이 포함된 다른 과학원 회원들과 손님 접대를 즐겼다.

에르디시는 그런 뛰어난 손님들에 대해 특별히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 그 사실이 친구들에게는 즐거운 농담거리였다. 유명한 오페라 가수를 소개받은 에르디시는 헝가리의 어린 학생들조차 이름을 알고 있는 유명한 시인을 소개 받았을 때도 에르디시는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만성적 실업자 수학자였던 에르디시의 지위를 고려해 본다면, 정말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한동안 주변의 산을 오랫동안 힘들게 걷곤 했다. 하이킹에 나설 때 투란의 모토는 수학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져지지 않은 길에서 멀리 벗어나지 말라였다. 왜냐하면 재미있는 긴 여행은 될 수 있지만 그만큼 점심식사가 늦어지기 때문이었다. 또 세 명의 동행자는 똑같이 자신들이 본 모든 봉우리에 올라가려는 억누를 수 없는 사춘기적 충동을 공 유하고 있었다.

만년에 실제로 늘 스스로가 그렇다고 주장해 왔던 늙고 약한 사람이 되었을 때에도 에르디시는 마트라하자를 방문할 때마다 근처 전망대로 이르는 가파르고 휘청거리는 철제 사다리에 오르겠다고 고집을 부리곤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파흐는 에르디시와 투란이 논하는 수학이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는 것이었음에도 그들이 연구하는 모습을 지켜 보는 것이 얼마나 즐거웠는가를 기억하고 있다.

소시와 레니도 종종 그들과 합류했다. 생각이 넘쳐 나올 때 껑충거리며 뛰어다니던 에르디시의 모습도 파흐는 기억하고 있었다. 에르디시의 사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휙휙 돌아 갔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속도대로 말하려고 하면 말이 생각을 따라잡지는 못했다. 참을성 없는 투란은 화가 나서 에르디시가 허튼 소리를 한다고 나무라곤 했다.

조금 더 인내심을 발휘하여 에르디시는 통찰력을 발휘해 조용히 사태를 진정시키곤 했다. 이럴 때면 레니는 재치 있게 화제를 돌리곤 했다. 이는 어린애 조차도 눈치챌 수 있었고 이들의 그런 모습을 지켜 보는 것은 더더욱 재미있었다. 파흐는 어른들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일어설 때까지 가능한 나서지 않고 한 구석에 앉아 있었다.

어른들이 나가고 나면 조용해진 방을 몰래 살금살금 가로질러서 사람들이 떠나고 없는 탁자로 다가갔다. 파흐는 고등 수학의 난해한 비밀 문자들이 빽빽이 들어찬 흩어져 있는 시험지들이 그 동안 시끄럽고 진지하게 진행 되었던 그 모든 농담들의 장본인이라는 생각에 경외심을 갖고 빤히 쳐다보았다.

그 분들이 연구를 마친 후 남겨 놓은 시험지들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이상한 문자와 숫자들, 기호, 화살표, 휘갈겨 쓴 낙서들까지 우주의 법칙이야말로 이렇게 신비로운 언어로 기록되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단순한 수학 문제가 이런 뛰어나고 유명한 사람들의 열정의 불꽃을 타오르 게 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언젠가는 자신도 그 신비로운 언어를 읽고 쓰겠노라고 파흐는 결심했다. 결국 에르디시의 고무와 격려로 수학자가 된 파흐는 에르디시의 공동 연구자 그룹의 또 다른 일원이 되었다. 에르디시 그룹에 합류하는 유일한 자격 요건은 수학적 재능이었다. 이는 결코 장애가 아니었다. 에르디시는 헝가리에 있을 때마다 젊은 수학자 클럽의 강연에 열심이었다.

벨라 볼로바시(Bella Bollobas)는 열네 살이던 1958년 그 모임에 참석 했던 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에르디시는 어린 청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강연의 수위를 조절하는 데에도 뛰어 났다. 그는 조합론과 기하학, 그리고 정수론의 흥미 있고 이해하기 쉬운 문제뿐만 아니라 종종 미해결이라는 부가적 매력을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제시했다.

그 문제들은 다른 수학의 기초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 문제들이었다고 볼로바시는 설명한다. 이들 문제 해결에 필요한 것이라고는 다만 사고의 독립성과 독창성이었다. 그 강연이 있고 몇 달 후 에르디시는 그 나이 또래에서 모든 수학 경시 대회를 휩쓴 수학자에 대해 듣게 되었다.

전도가 기대되는 새싹들을 대하는 그 자신의 독특한 방식대로 에르디시는 부다페스트의 멋진 호텔로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점심을 먹자고 볼로바시를 초대했다. 에르디시와 볼로바시가 수학을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에 에르디시의 만났다. 볼로바시는 열일곱 살 때에 그의 첫 논문을 에르디시와 함께 썼는데 사실 그것은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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