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10월 4일 헝가리의 수학자 에르디시가 미국 프린스턴에 도착한 시점에 고등학문 연구소는 정확하게 5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뉴저지 주 프린스턴 시의 숲으로 우거진 외곽 지대에 넓직히 자리한 이 연구소는 세상사의 근심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이 곳은 이 연구소의 창설자이자 미국 교육의 개혁자인 에이브러험 플렉스너(Abraham Flexner)의 말대로 지식인들에게는 진정한 낙원이었다.

지식인의 낙원 고등학문 연구소
8년 전 플렉스너에게 박애주의자가 되고 싶어하는 루이스 햄버거(Louis Bamberger)와 그의 누이 캐롤라인 뱀버거 풀드(Caroline Bamberger Fuld)가 찾아왔다. 이들 남매는 플렉스너를 찾아오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4번째로 큰 소매 체인점인 뱀버거스 백화점의 소유주였다.
엄청난 부를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그들만의 통찰력과 행운 덕택에 뱀버거 남매는 증권시장이 붕괴된 1929년의 검은 월요일보다 6주 앞서 주식을 팔아 치웠다. 뱀버거 남매는 운이 좋은 만큼이나 관대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를 그들이 돈을 버는 데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 즉 뉴저지의 고객들을 위해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들이 처음 떠올린 생각은 의과대학을 만들어 기증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 의과대학의 부패와 부정을 고발하여 유명해진 뛰어난 의사이며 교육자 인플렉스너를 찾아왔던 것이다. 플렉스너는 뱀버거의 돈을 최고로 잘 쓸 수 있는 독특한 아이디어를 내 놓았다. 플렉스너는 뱀버거 남매에게 아마도 피타고라스 이후로는 유례가 없었던 기존의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연구소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플렉스너가 말한 연구소는 피타고라스의 학교처럼 학자들과 과학자들이 현실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지 않고 이 세계와 그 곳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하나의 실험실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는 곳이었다.
미국에는 많은 의과대학들이 있었지만 플렉스너가 상상하는 것과 같은 연구소는 어디에도 없었다. 뱀버거 남매는 그의 설명에 홀딱 반해서 꿈을 실현해 줄 거액의 수표를 끊어 주었다. 유럽에서는 파시즘으로 타오른 현실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었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수학자들과 과학자들의 상당수가 필사적으로 안전한 거처를 찾고 있었다.
그들 중 으뜸가는 인물은 당시 세계에서 가 장 유명한 과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이었다. 플렉스너가 맨 처음 한 일은 아인슈타인을 연구소의 첫 번째 교수로 맞아 들이는 것이었다. 이 일로 이 연구소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풍족한 봉급과 안정적인 연구 환경, 학생들은 없고 교수와 박사학위를 소유한 지식인만 있기 때문에 가르칠 의무 같은 것은 없었다.
아인슈타인과 같은 인물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연구소는 곧 전 세계의 지적 엘리트 집단이 되었다. 특히 수학자들과 이론물리학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연구가 다른 학문에서는 볼 수 없는 천상의 순수함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욱 더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이 연구소를 방문한 어떤 사람이 아인슈타인에게 실험실을 보여 달라고 부탁하자 이 위대한 물리학자는 가슴 호주머니에서 멋지게 만년필을 꺼내며 ‘여기요!’라고 선언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좋아했던 이 연구소의 연구 방식이었다.
이 곳은 에르디시에게도 플렉스너가 그러리라고 약속했듯이 낙원이었다. 나중에 이 연구소의 책임자가 된 로버트 오펜하이머(Robert Oppenheimer)는 이 곳을 지식인들의 호텔이라고 불렀다. 장시간의 산책과 휴게실에서의 빈둥거림, 끝도 없이 계속되는 바둑 게임, 그런 환경에서 제대로 연구가 되리라고 생각하긴 어려웠지만 성과가 계속 나왔다.
에르디시와 다른 수학자들이 그 연구소에서 바둑에 중독되었다는 것은 이해가 된다. 이 동양의 놀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단순하다. 검은 돌과 흰 돌을 번갈아가며 가로/세로 19개로 나누어진 사각형 판 위에 놓으면서 게임은 진행된다. 바둑이라는 게임은 실제로 그래프 이론 문제와 다르지 않다.
체스를 둘 줄 아는 IBM의 슈퍼 컴퓨터 딥 블루(Deeper Blue)는 체스 경기의 세계 챔피언인 개리 카스파로프(Gary Kasparov)를 때려 눕히지만 바둑을 가장 잘하는 컴퓨터도 취미 삼아 바둑을 하는 실력있는 애호가를 때려 눕히지 못한다. 이것은 가까운 장래에도 일어나기 힘들 것 같다. 그것이 바로 바둑을 왜 뛰어난 두뇌의 사람들이 즐기는 완벽한 여가활동인가에 대한 답변이 될 것이다.
재미와 놀이를 만끽하면서도 할모시와 에르디시를 포함한 다른 수학자들은 놀랄만한 양의 일을 해낼 수 있었다. 전설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많은 일을 해냈던 에르디시의 일생 중에서도 여기에서 보낸 1년 반은 특히 두드러진다. 손을 댄 모든 분야에서 그는 해결해야 할 문제를 발견 했고, 함께 연구할 동료들을 찾아냈다.
에르디시의 타고난 수학적 능력은 이 곳의 우수한 연구원들까지 놀라게 하였다. 한 번은 파인홀(Fine Hall)이라는 휴게실에서 두 명의 수학자가 위상수학의 한 분야인 차원 이론에 대한 문제를 토론하고 있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 당시 에르디시는 그 분야에 거의 문외한이었지만 금세 핵심을 간파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등 뛰어난 두각을 보이기도 했다.